가끔, 난 산책하는 도시의 관찰자로서 도시를 여행한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을 한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여행은 목적지가 있고, 일정이 있고, 돌아올 날짜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산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두 발과, 열려 있는 눈과 귀, 그리고 서두르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 도시란 무엇인가
도시란 무엇인가. 사람이 많이 운집해 함께 생활하는 공간, 인간과 예술이 혼재된 자리다. 예술은 홀로 빛을 발하기 어렵고, 인간 역시 홀로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빛을 발할 수 없다. 흔히 둘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예술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동행자다.
인간이 예술을 빌려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그 예술로 인간을 품는다. 이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까닭이다. 인간 없이 예술이 존재할 수 없고, 예술이 없는 삶은 궁핍하고 척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머지않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벽에 그려진 낙서 하나, 골목 끝의 작은 간판 글씨체, 노점상이 밤새 늘어놓은 좌판의 배열, 낡은 건물의 창틀에 걸린 빨래까지 —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끝에서 나온 예술이고, 그 예술이 다시 도시의 표정을 만든다. 도시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이들이 남긴 무수한 작은 미감(美感)들로 지어진다.
◆ 걷는 자의 눈
빠르게 지나가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차창 너머로 스쳐 가는 도시는 배경일 뿐이지만, 두 발로 걷는 도시는 무대가 된다. 걷는 속도라야 비로소 벽의 균열이 보이고, 오래된 나무의 뿌리가 보도블록을 밀어 올린 흔적이 보이고, 낯선 이의 표정에 스친 찰나의 감정이 보인다.
그렇게 걷다 보면 도시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나와 기어이 싹을 피워낸 여린 풀 한 포기와 마주칠 때가 있다. 그 작은 생명력 앞에서 나는 경외감을 느낀다.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존재를 발견하는 신비, 그것 또한 도시를 산책하는 관찰자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옛사람들도 이것을 알았다. 장자(莊子)는 소요유(逍遙遊)를 말했다. 정처 없이 노닐며 거니는 것, 목적 없는 걸음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걸음이라는 뜻이다. 서양에도 비슷한 눈이 있었다. 19세기 파리의 산책자, 이른바 플라뇌르(flâneur)는 군중 속을 유유히 거닐며 도시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자였다. 동양의 소요유와 서양의 플라뇌르가 가리키는 곳은 결국 하나다. 도시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자는 도시를 가장 바쁘게 지나가는 자가 아니라, 가장 느리게 걷는 자라는 것.
느릿느릿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도시의 산책’을 해보길 권하고 싶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 보면, 처음 보는 골목에서 뜻밖의 벽화를 만나기도 하고, 오래된 서점의 낡은 간판 앞에서 걸음이 저절로 멈추기도 한다. 그 우연한 마주침이야말로 도시가 걷는 이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 저녁의 거리에서

해가 기울 무렵의 도시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낮 동안 무표정하던 건물들이 창문마다 하나둘 불을 밝히면, 도시는 마치 숨을 고르고 하루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의 창가에 앉은 이들의 옆얼굴, 퇴근길 발걸음의 무게,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언어의 노랫소리 — 이 모든 것이 겹쳐져 저녁의 도시를 이룬다.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무언가에 들떠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모습,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스쳐 가는 모습,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장바구니를 든 채 걸어가는 모습, 앞서 걷던 할아버지가 문득 뒤돌아보며 늦게 오는 할머니를 재촉하는 모습 — 이런 저마다의 크고 작은 삶의 장면들을 마주치는 것도 산책자의 큰 기쁨이다. 누구의 삶인지 알 수 없어도, 그 짧은 순간의 표정과 몸짓만으로 한 사람의 하루, 어쩌면 한 생애의 결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이런 순간, 나는 관찰자가 된다. 참견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다만 지켜본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관찰의 대상이라는 것을. 걷는 자는 동시에 걸어지는 자다. 이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처럼, 도시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 도시는 기억한다
먼 훗날 우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일 수 있다. 도시는 그 자리에 언제나 버티고 있을 것이고, 산책하던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저장하여 후세에게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란 그렇게 걷던 이들이 생각하고 느끼던 모습을 차곡차곡 모아 쌓아서, 윤택하게 증식하고 번성시켜 문명을 지속하는 것이다. 즉, 도시란 시민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다.
돌이 닳아 반질반질해진 오래된 계단이나, 수많은 손이 스쳐 지나가 매끄러워진 난간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은 더 굳어진다. 그 매끄러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은 무수한 이들의 발걸음과 손길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는 그렇게 익명의 걸음들을 자신의 살갗에 새겨 넣는다. 우리가 오늘 남기는 발자국 소리 하나도, 언젠가 이 도시의 어느 결 속에 조용히 스며들 것이다.
산책하던 나의 향기와 품격을 도시가 어딘가에 새겨 둘 것이라는 상상은, 이 목적 없는 걸음을 더 기쁘게 한다. 오늘도 나는 목적지 없이 걷는다. 그리고 그 걸음이 언젠가 이 도시의 기억 한 구석에 자리잡고 그 도시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만두의 객석, 권두안JD-
“의미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미학으로, 미학에서 소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