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경허선사(鏡虛禪師, 1849~1912)는 쇠퇴해가던 조선 불교의 선풍(禪風)을 되살린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중흥조다. 9세에 과천 청계사로 출가하여 당대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31세에 전염병 창궐로 인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후 파계와 기행을 넘나들며 대자유의 선구자적인 삶을 살았다. 동학사, 해인사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선원을 개설하여 오늘날 한국 선불교 결사정신의 기틀을 다졌다.
「경허(鏡虛)」 선사는 오래 고민했다. 산속에 머물러 수행을 이어갈 것인가, 저잣거리로 내려가 무애행(無碍行)을 펼칠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그가 내놓은 답이 이 한 구절이다.
세상에 사는 것과 청산에 사는 것, 어느 쪽이 옳은가(世與靑山何者是). 답은 간단하다—어디든 상관없다. 봄빛이 이르는 곳에 피지 않는 꽃은 없다(春光無處不開花). 저잣거리든 산속이든, 볕이 드는 자리라면 어디서나 꽃은 핀다. 이 한마디로 경허는 산문을 나선다. 임제(臨濟)가 말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참되다—의 정신을, 경허는 몸소 저잣거리로 내려가 살아냈다.
입전수수(入廛垂手)—산에서 얻은 깨달음을 산에 묻어두지 않고, 저잣거리에 손을 담그고 사람들 속으로 내려오는 것.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스스로 주인이 되느냐가 전부다.
그러니 자연은 봄이 오면 꽃을 피우지만, 사람은 거꾸로다. 사람은 먼저 꽃을 피워야, 즉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야 비로소 봄이 온다. 자연의 개화는 순리를 기다리는 일이고, 사람의 개화는 순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산의 가치는 높음에 있지 않다. 그 산에 신선이 사느냐에 따라 이름이 난다. 물의 가치는 깊음에 있지 않다. 그 물속에 용이 사느냐에 따라 신령해진다. 겉치레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이다. 높이도, 깊이도, 그 자체로는 아무 값이 없다. 값을 매기는 것은 언제나 그 안에 무엇이 사느냐다.

술이 있으면 신선놀음을 하며 배우면 되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면 된다. 조건을 핑계 대지 말라.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그 조건에 맞게 내가 바뀌면 그만이다. 신선의 길이든 부처의 길이든, 결국 나아가는 방향은 하나다—매인 데 없이, 있는 자리에서 주인으로 서는 것.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날이다. 화양연화는 먼 훗날 돌아볼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꽃이 지고서야 봄이었음을 알았노라 자각한다면, 이미 때는 늦으리라.
“의미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미학으로, 미학에서 소통으로”
-만두의 객석, 권두안 J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