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 불교는 찰나를 인식의 최소 단위로 정의한다. 모든 존재는 매 찰나 생(生)하고 멸(滅)한다. 우리가 연속된 것으로 보는 현실은, 사실 수천억 번의 생멸이 빠르게 연속되는 것이다. 영화의 프레임 처럼.
이 시각에서 보면, 아틀란티스라는 문명도 우주적 시간 속에서 하나의 찰나였다. 그러나 그 찰나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찰나는 영원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틀란티스의 찰나는 인류라는 거대한 의식의 강물 속에 영원히 흘러가고 있다.
형이하의 세계에서 보면 아틀란티스는 사라졌다. 그러나 형이상의 세계에서 보면, 그것은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뿌리다. 형이하와 형이상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실재가 드러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존재 너머의 존재.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사라진 것들 안에, 바다의 침묵 안에, 그리고 우리가 망각한 기억의 깊은 곳에 언제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