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방향과 이익의 방향
- '누가 누구를 유혹하는가' -
옛말에 '탐화봉접(探花蜂蝶)'이라 했다. 꽃을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 이 말은 오래도록 여색을 좇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내를 나무라는 뜻으로 쓰였다. 탐하는 자는 벌이고, 탐해지는 것은 꽃이다.
문장의 주어는 언제나 벌이었다. 그런데 식물학의 눈으로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주어가 통째로 뒤집힌다. 화탐봉접(花探蜂蝶). 꽃이 벌과 나비를 찾는다. 한문 어법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문장이다. 探花는 “꽃을 찾다”이니 벌이 주어여야 하고, 花探이라 쓰면 어순이 어그러진다. 그러나 이치로 따지자면 이쪽이 옳다. 어법을 어겨야 비로소 진실에 닿는 문장이 있다.
꽃은 탐해지는 쪽이 아니다. 부르는 쪽이다. 꽃잎의 빛깔, 향기, 꿀샘의 위치, 심지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곤충의 자외선 시야에만 드러나는 무늬까지 — 이 모두가 벌의 감각에 맞추어 정교하게 설계된 유인 장치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꽃가루를 옮겨 줄 존재를 반드시 불러들여야 했고, 그 댓가로 꿀이라는 품삯을 지불한다.
- 만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