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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온건가?

작성자 萬頭권두안
작성일 26-04-15 15:43 | 71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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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범종설(汎種說)이 열어놓은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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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로 문을 열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종교는 이 질문에 창조주를 세웠고, 과학은 진화론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편의 SF 영화가, 아주 오래되고 아주 진지한 세 번째 대답을 다시 꺼내놓았습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입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 앤디 위어 원작. 지금 전 세계 극장에서 상영 중이고, 한국에서도 이미 1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저는 오늘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으로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가 '범종설(汎種說, Panspermia)'이라는 과학 가설과 어떻게 포개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근본 물음에 어떤 새로운 빛을 던지는지 —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1부  범종설 — 씨앗이 우주를 떠돈다  
 
먼저 '범종설'이 무엇인지부터 짚겠습니다.
 
汎種說. 넓을 범(汎), 씨 종(種), 말씀 설(說). 말 그대로 '씨앗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는 가설입니다. 생명은 지구에서 홀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우주 공간을 떠도는 물질을 타고 이 행성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과학의 언어로 정식화한 것은 19세기 물리학자 켈빈 경과 스반테 아레니우스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의 공동 발견자 프랜시스 크릭이 1973년 동료 레슬리 오겔과 함께 논문 한 편을 발표합니다. 제목은 '유도된 범종설(Directed Panspermia)'이었습니다.
 
크릭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DNA 구조는 너무나 정교하다. 우연한 화학 반응으로 이 복잡성이 탄생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의 외계 문명이 의도적으로 생명의 씨앗을 담은 캡슐을 우주에 뿌렸고, 그것이 지구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범종설(汎種說)이 열어놓은 질문 —
 
오늘은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로 문을 열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종교는 이 질문에 창조주를 세웠고, 과학은 진화론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편의 SF 영화가, 아주 오래되고 아주 진지한 세 번째 대답을 다시 꺼내놓았습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입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 앤디 위어 원작. 지금 전 세계 극장에서 상영 중이고, 한국에서도 이미 1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저는 오늘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으로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가 '범종설(汎種說, Panspermia)'이라는 과학 가설과 어떻게 포개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근본 물음에 어떤 새로운 빛을 던지는지 —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크릭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DNA 구조는 너무나 정교하다. 우연한 화학 반응으로 이 복잡성이 탄생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의 외계 문명이 의도적으로 생명의 씨앗을 담은 캡슐을 우주에 뿌렸고, 그것이 지구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DNA의 노벨상 수상자가 한 말입니다. 결코 가볍게 흘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들이 있습니다.
 
첫째,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단 하나의 유전 코드를 공유합니다. 인간이든 대장균이든 나무든 — 같은 언어, 같은 문법을 씁니다. 이것은 생명이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그 '하나의 기원'이 지구 안에서 우연히 생겨났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왔는가.
 
둘째, 약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입니다. 수십억 년 동안 단세포 생물만 있던 지구에서 갑자기 수천 종의 복잡한 생물이 폭발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셋째, 실험실에서 확인된 사실 — 일부 미생물의 포자는 우주 방사선과 진공 상태에서도 수천만 년 생존이 가능합니다. 이론상 운석을 타고 태양계를 건너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범종설은 검증된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검증 불가능한 상상도 아닙니다. 진지하게 열려 있는 가설입니다.
 
 
2부  《프로젝트 헤일메리》 — 범종설이 움직이는 영화 
 
자, 이제 극장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지구의 태양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원인을 조사해보니 '아스트로파지'라는 단세포 외계 생명체가 태양 에너지를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치하면 빙하기, 그리고 인류 멸종. 그런데 주변 별들이 모두 어두워지는 가운데, 12광년 거리의 별 타우 세티만 멀쩡했습니다. 인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우주선 '헤일메리호'를 그 별로 보냅니다. 돌아올 연료도 없는, 편도 임무입니다. 헤일메리 —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기적을 바라며 던지는 마지막 롱패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안에서 깨어납니다. 동료들은 이미 사망.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조각난 기억을 하나씩 되찾으며 임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그리고 타우 세티에 접근하던 중 — 또 다른 우주선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로키'가 있었습니다. 로키도 그레이스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자신의 문명을 위협하는 아스트로파지를 막으려고, 홀로 살아남아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른 두 존재가 — 같은 문제를 안고, 같은 별을 향해, 같은 시간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우주 생존물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외계인이 침략자도, 신비로운 초월자도 아닙니다. 같은 두려움을 가진, 같은 처지의 — 동료입니다. 결말에서 그레이스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지구로 돌아가 인류를 구하는 영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에 처한 친구 로키를 구할 것인가. 그레이스는 후자를 택합니다. 그리고 연구 성과를 탐사선에 실어 지구로 보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 로키의 행성 에리드, 에리디안들이 그레이스를 위해 만들어준 거대한 생태 돔 안에서, 그레이스는 외계인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칩니다.
 
기억을 잃고 깨어난 인간이, 낯선 행성에서, 낯선 존재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3부  영화와 범종설이 만나는 지점  
 
자, 이제 두 이야기를 겹쳐놓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레이스는 연구 성과를 '캡슐'에 담아 우주로 보냅니다. 그 캡슐이 지구에 도달하면, 인류는 살아남습니다. 보낸 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보는 전달됩니다. 씨앗은 뿌려집니다. 이것이 범종설의 서사와 정확히 포개집니다.
 
멸망을 감지한 문명이, 마지막 생존의 씨앗을 단단한 캡슐에 담아, 우주에 뿌린다. 그 씨앗이 원래 있던 행성과 비슷한 환경의 다른 행성에 떨어지면,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새 삶을 시작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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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모든 생명이 같은 DNA 코드를 쓴다는 것 — 그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이 아닙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먹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얼룩말의 단백질이 사자의 세포가 읽을 수 있는 같은 코드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포도당을 인간이 분해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 다시 나무의 양분이 되는 것도 — 모두 같은 이유입니다.
 
만약 생명이 지구에서 여러 번 독립적으로 발생했다면, 혹은 서로 다른 기원에서 왔다면, 이 호환성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운영체제처럼, 읽을 수 없는 파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읽습니다.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로 돌아갑니다. 이 거대한 먹이사슬과 공생의 그물 —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같은 씨앗에서 나왔다는 가장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범종설의 답은 실험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이 생태계 안에 이미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것을 緣起(연기)라 했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 노자는 萬物竝作,各復歸其根 (만물병작,각복귀기근),만물은 무성하지만 결국 같은 뿌리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과학이 DNA에서 발견한 것을, 동양 철학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직관으로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인류가 바로 그 씨앗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구에서 스스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멸망을 앞두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보내진 존재일 수 있습니다. 기억을 지운 채. 수면 상태로. 적합한 환경의 행성에 도달하면 깨어나도록. 그렇게 보면, 영화 속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고 낯선 우주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 무의식을 건드리는 은유로 읽힙니다.
 
"우리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문명과 종교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은, 어쩌면 망각된 기원을 되찾으려는 본능적 충동인지도 모릅니다. 老子는 말했습니다. 知常曰明(지상왈명),항상함(근원)을 아는 것이 밝음이다. 우리의 근원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 근원이 이 행성 안에 있든, 아니면 12광년 너머 어딘가에 있든. 그리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吾日三省吾身 (오일삼성오신),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살핀다. 범종설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흥미로운 것은 — 프랜시스 크릭 역시, DNA를 발견하고 나서 그 정교함에 압도되어 이 가설을 진지하게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의 정점에 선 사람이 과학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인간은 다시 '기원'이라는 근본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말합니다.
 
기억을 잃어도 괜찮다. 혼자라도 할 수 있다. 전혀 다른 존재와도 통할 수 있다. 그리고 — 돌아오지 못해도, 씨앗은 살아남는다. 어쩌면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보내진 씨앗. 기억은 잃었지만, 살아남아 피어나고 있는. 그리고 지금, 우주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는.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범종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 가설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생명은 혼자가 아니다. 우주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 속 그레이스가 로키를 만나 깨달은 것처럼 —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누군가 또한 이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범종설을 통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SF가 아닙니다. 철학입니다.
 
의미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미학으로, 미학에서 소통으로.

 -만두의 객석, 권두안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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