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모른다.
너무나 많은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참으로 둔갑시킨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댓가가 지금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독은 소리 없이 온다.
폭발도, 비명도 없다.
다만 아주 천천히 — 반세기의 시간을 두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
**〔첫 번째 장면 — 월남의 하늘, 1960년대〕**
1960년대, 월남의 밀림 위로 고엽제가 뿌려졌다.목적은 단순했다. 시야를 가리는 초록을 걷어내는 것.
정글은 사라졌고,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그 안에 불순물로 섞여 있던 다이옥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흙에, 강에, 그리고 사람의 몸속 깊은 지방까지 — 수십 년을 파고들었다.
60년이 흐른 지금, 참전용사들은 여전히 그 값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제야,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따지는 대신
그 고통을 '추정'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증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는 부정할 수 없어서다.
그때 우리는 배웠어야 했다.
보기 싫은 초록을 화학으로 걷어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
**〔두 번째 장면 — 캘리포니아, 옛 목장 위의 주택단지〕**

반세기 뒤, 캘리포니아.옛 목장 자리에 세운 부유한 주거단지가 있다.
이곳의 자랑은 티 없이 짙푸른 잔디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라는 증거처럼, 잔디는 눈부시게 푸르다.
그런데 그 완벽한 초록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열일곱 종의 농약이 거의 매일 뿌려졌다.
가장 푸른 잔디는, 가장 많이 뿌린 잔디였다.
그리고 그 잔디 위에서, 아이들이 뛰놀았다.
여섯 명의 아이가 희귀한 암 진단을 받았다.
아직 아무도 "농약 때문"이라 단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도 "농약과는 무관하다"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건강의 상징이었던 초록이, 이제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
**〔세 번째 장면 — 우리의 주말, 골프장의 그린〕**
그리고 우리의 주말.골프장의 그린 — 세상에서 가장 정성 들여 관리되는 잔디.
그 완벽함 앞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
새벽에 잡초를 뽑고 약을 치는 사람,
그리고 한낮에 그 위를 걸으며 공을 집는 사람.
한쪽은 생계로, 한쪽은 여가로 —
같은 잔디,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잔디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를 가릴 뿐이다.
가장 많이 노출된 이는, 대개 가장 적게 말할 수 있는 이였다.
---
**〔네 번째 장면 — 운동장의 잔디, 아이들이 뒹구는 곳〕**
그러나 잔디는 걷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누군가는 그 위에 눕고, 구르고, 쓰러진다.
축구장.
골퍼가 잔디 위를 걷는다면, 선수는 잔디 위에 몸을 던진다.
태클에 살갗이 쓸리고, 그 벗겨진 자리로 잔류물이 파고든다.
거친 숨은 잔디 위의 먼지를 그대로 삼키고,
땀에 젖은 몸은 화학물질을 더 깊이 빨아들인다.
접촉의 깊이가 다르다.
어른은 잔디 위를 걷지만, 아이는 잔디 위에 눕는다.
그리고 그 운동장은, 프로 선수만의 것이 아니다.
동네 유소년 구장, 학교 운동장 —
아이들이 매주 뒹구는 그 초록도, 똑같이 관리된 잔디다.
주택가에서 뛰놀던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는 그 잔디에 온몸을 부딪는다.
---
**〔닫는 말〕**
전장의 밀림에서, 주택가의 마당으로,
주말의 골프장에서,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무대는 네 번 바뀌었지만, 이야기는 하나다.
우리는 눈부신 초록에 감탄할 뿐,
그 초록이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보기 좋으니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
그 믿음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익숙한 착각이다.
감춰진 진실은 늘 발밑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늘 보기 싫은 것을 화학으로 지워왔다.
잡초를, 잡목을, 눈에 거슬리는 초록을.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한 세대쯤 늦게 청구된다.
오늘도 어딘가의 잔디는 눈부시게 푸르다.
우리는 그 초록을 밟고 서서, 여전히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정말,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萬頭의 객석, 권두안 JD-